스페인 축구협회(RFEF)가 교육 부문의 새 이름 ‘La Academia’를 내놓은 2025년 9월 23일, 그 자리에서 마르셀로 비엘사(Marcelo Bielsa)가 한 시간 반짜리 강연을 했다. 제목은 ‘골문을 향해 차는가, 골문의 한 곳을 향해 차는가’. 일흔 살의 감독이 그날 꺼낸 숫자 하나가 오래 남는다. ESPN Deportes는 이 강연을 “축구에서 쓸 수 있는 전술 시스템 열한 개를 설명했다”고 전했다. 평생 전술을 파고든 사람이 내린 결론치고는 단출한 숫자다.
경기를 보며 외우는 그 수많은 포메이션이 정말 열한 개로 모일까. 그리고 그 숫자는 훈련장에서 무슨 뜻일까. 이 노트는 그 강연을 다룬 기록과 자료실 글 네 편을 한 줄기로 엮는다. 축구를 처음 접하는 사람도 따라오도록 처음부터 천천히 적는다.
포메이션이라는 말부터
먼저 가장 기본. 한 팀은 열한 명이 뛴다. 골문을 지키는 골키퍼 한 명을 빼면 열 명이 남고, 이 열 명을 경기장 어디에 세울지 정한 것이 포메이션—우리말로 하면 ‘자리 배치도’다.
숫자는 뒤에서 앞으로 읽는다. 4-3-3이라면 수비 넷, 그 앞 미드필더 셋, 가장 앞 공격수 셋. 골키퍼는 늘 있으니 숫자는 필드 열 명만 센다. 그림 한 장으로 보면 이렇다.
비엘사라는 사람
마르셀로 비엘사. 아르헨티나 출신의 이 감독을 사람들은 ‘축구 전술의 교수’라 부른다. 펩 과르디올라처럼 지금 세계 최고로 꼽히는 이들이 그를 스승으로 여기고, 비엘사는 같은 강연에서 과르디올라를 “내가 축구를 분석해 온 이래 세계 최고의 감독”이라 불렀다. 그는 상대 한 팀을 분석하려고 지난 시즌 경기를 통째로 외울 만큼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가 오래 읽히는 이유는 우승 이력보다 ‘왜’를 끝까지 묻는 태도에 있다. 남들이 유행하는 전술을 따라갈 때, 그는 전술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분해했다. 그 분해의 끝에 열한 개라는 숫자가 있다.
열한 개라는 말의 진짜 뜻
이 목록을 읽는 열쇠는 숫자 너머의 쓰임에 있다. 포메이션은 ‘우리는 이런 팀이다’라는 간판보다, 상대에 맞춰 바꿔 쓰는 도구에 가깝다. 옷장에 견주면 쉽다. 옷이 열한 벌 걸려 있고, 그날의 날씨—곧 상대—를 보고 골라 입는다. 중요한 건 그 옷을 입고 어떻게 움직이느냐다.
비엘사 자신이 그날 이렇게 말했다. “선수는 그들을 세우는 여러 방식보다 한없이 더 중요하다.”(Montevideo Portal) 한 가지 모양에 팀을 끼워 맞추는 길과는 반대편에 선 말이다. 모양은 출발점이다.
첫 번째 규칙 — 수비를 늘 한 명 더
그렇다면 어떤 옷을 고를까. 비엘사의 팀을 분석한 자료들이 한목소리로 꼽는 첫 번째 기준은 놀랄 만큼 단순하다. 상대 공격수보다 우리 수비수를 항상 한 명 더 두는 것. 상대가 공격수 둘을 세우면 우리는 뒤에 셋을 둔다.
가위바위보에서 한 수 앞서 내는 것과 비슷하다. 이 한 명의 여유가 있어야 뒤에서부터 차분히 경기를 풀어 나간다. 상대보다 한 명 많은 상태를 축구에서는 수적 우위라 부른다. 빌드업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릴 때는 이 ‘+1’ 그림 하나면 충분하다.
두 번째 규칙 — 같은 열한 명, 모양만 바꾼다
두 번째 규칙은 같은 선수들로 모양이 바뀐다는 것이다. 양쪽 끝을 지키는 수비수를 ‘풀백’이라 부르는데, 이 풀백 한 명이 앞으로 올라가면 뒤를 지키던 넷이 셋으로 줄어든다.
그래서 비엘사의 포메이션은 늘 백4 하나와 백3 하나가 짝으로 존재한다. 같은 사람들이 옷만 바꿔 입는 셈이다.
“위대한 팀은 같은 선수들로 모든 시스템을 뛸 수 있는 팀이다.”
Marcelo Bielsa, RFEF 강연 · Montevideo Portal, 2025.09.25
그는 교체 카드에 기대는 대신 서 있는 선수들로 시스템을 바꾸는 일에 큰 값을 둔다고 했다. ‘플랜 B’를 벤치보다 판 안에 먼저 담아 두는 이유다.
경기장에서는 이미 일어나는 일
이 규칙은 한 감독의 취향을 넘어선 흐름이다. 자료실의 전술 노트 ‘적응형 포메이션’은 분데스리가 일곱 시즌 1,803경기의 추적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를 소개한다. 경기의 43%에서 큰 포메이션 변경이 한 번 이상 나왔고, 경기당 평균은 1.7회였다. 형태를 바꾸는 일은 절반에 가까운 경기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장면도 있다. 2026 월드컵 조별리그 Japan 1-1 Sweden. 스웨덴의 Graham Potter 감독은 후반에 Anthony Elanga를 두 중앙 미드필더 옆으로 내려 1-5-2-3을 1-5-3-2로 돌렸고, 일본이 쓰던 왼쪽 통로가 닫혔다. 선수 한 명의 줄을 바꾼 것이 전부다. 이 경기를 정리한 FIFA 기술연구그룹의 Jayne Ludlow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계획이 여러 개인 경기다.”
클럽에서도 같은 그림이 보인다. Coaches' Voice가 분석한 Frank Lampard의 Coventry City는 4-2-3-1로 서지만 빌드업에서는 4백이 3백으로 바뀐다. 피벗 한 명이 센터백 사이로 내려오거나, 오른쪽 풀백 Milan van Ewijk가 올라가고 센터백들이 그 자리로 옮겨 간다. 비엘사가 짝으로 묶어 둔 백4와 백3가 한 경기 안에서 번갈아 나타나는 셈이다.
값도 따른다. 같은 분데스리가 연구에서, 상대가 수비수 두 명으로 빌드업할 때 우리 미드블록의 형태에 따라 허용 기대득점(xG)이 0.27 갈렸다. 34경기로 환산하면 약 아홉 골이다. 바꾸는 횟수보다 무엇으로 바꾸느냐가 값을 정한다.
열한 개를 펼쳐 본다
이제 그 열한 개를 직접 보자. 먼저 수비 넷으로 시작하는 다섯 가지. 상대 공격수가 적을 때 주로 꺼내 드는 형태들이다.
그리고 위 다섯에서 풀백을 한 명씩 올린, 수비 셋짜리 다섯 가지. 같은 자리에 놓인 것끼리 서로 짝이다. 이 중 3-3-1-3는 비엘사가 평생 가장 아낀 시그니처다.
그리고, 열한 번째
마지막 하나. 강연을 분석한 자료들은 비엘사가 최근 이 목록에 3-2-2-3를 더했다고 전한다. ‘3-Box-3’라고도 부르는데, 상대가 좁게 4-2-2-2로 나올 때 맞불을 놓는 그림이다. 시그니처 3-3-1-3를 살짝 비튼 모습이다.
가운데 2-2가 이루는 네모꼴은 자료실의 다른 전술 노트가 다룬 ‘박스 미드필드’와 같은 장치다. 보통 두세 명이 서는 상대 중원에 네 명을 세워 숫자로 이긴다. 일흔의 감독이 여전히 자기 목록을 고쳐 쓰고 있다.
훈련장에서는 형태부터 맞춘다
모양을 바꾸는 팀은 훈련도 다르게 한다. 일본의 지도자 이케가미 다다시(池上正)는 사카이쿠 연재에서, 비엘사의 ‘일본인 제자’로 불리는 아라카와 도모야스의 책 『비엘사 노트』를 인용한다. 비엘사는 대인 훈련을 아주 드물게 쓴다. 콘이나 인형을 수비 자리에 세워 두고, 볼을 움직이는 방법과 타이밍, 거기서 이어지는 전개 패턴을 뇌와 몸에 스며들게 한다.
이유는 이렇다. 공격을 처음부터 대인으로 연습하면 선수는 그 자리에서 ‘싸우기’ 시작하고 훈련이 어수선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볼을 움직여 공격한다”는 그림을 전원이 먼저 같게 맞춘다. 좋은 타이밍에 받으러 오고 좋은 타이밍에 패스를 내는 일이 몸에 배면, 수비가 붙은 실전에서도 그 안에서 좋은 위치를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두 이야기를 겹치면 이렇게 읽힌다. 뒤에 몇 명을 둘지는 상대를 보고 고르고, 공을 움직이는 방식은 우리 것으로 몸에 새긴다. 옷은 날씨를 보고 고르되, 걷는 법은 늘 같은 셈이다.
자료실의 ‘적응형 포메이션’ 글도 훈련 쪽 결론을 적어 둔다. 코치의 준비는 형태 목록보다 원칙에서 시작한다. 끝까지 지킬 것—뒤에 남길 인원, 폭을 만드는 선수, 전진의 첫 패스—을 정해 두고, 같은 빌드업 원칙을 4-3-3과 3-2-5 두 구조로 번갈아 연습한다. 한쪽 통로가 막혔을 때 어느 선수가 줄을 옮기는지도 미리 약속해 둔다.
강연이 남긴 것
손에 남는 것은 세 줄이다. 포메이션은 열한 개로 모인다. 백4와 백3는 같은 열한 명의 두 얼굴이다. 그리고 모양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가 진짜 핵심이다.
PROCESS는 이 강연을 한 문장으로 줄인다. 틀보다 상대를 먼저 보라. 유소년 훈련장에 가장 먼저 옮기고 싶은 말이다. 정해진 자리를 외우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눈앞의 상황을 읽고 스스로 모양을 바꾸는 선수를 기르는 일.
비엘사는 그날 스스로를 “모방과 복제를 충실히 우러르는 사람”이라 불렀다. 잘된 것을 보고 그것을 해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 문화의 바탕이라는 말이었다. 이 노트도 그렇게 쓴 기록이다.
경기와 경기 사이의 엿새를 코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채우는가 — 아스날의 훈련표 한 장과 자료실 글 다섯 편을 엮는다.
- 적응형 포메이션 — 한 경기 안에서 형태를 바꾸는 팀원문 · Japan v. Sweden: Adapting attacking strategies mid-game · FIFA Training Centre
- Frank Lampard의 Coventry City — 빌드업에서 4백을 3백으로 바꾸는 전환의 기술원문 · Frank Lampard: tactics and style of play at Coventry City · Coaches' Voice
- 대인 훈련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Marcelo Bielsa — 인지·판단을 기르는 '형태의 훈련'원문 · 池上正コーチングゼミ · 사카이쿠, 2026.08.28
- 2-3-5 빌드업과 박스 미드필드 — 중앙을 숫자로 이긴다원문 · Box midfield: football tactics explained · Premier League
- Marcelo Bielsa explica su métodoRFEF 공식 기사, 2025.09.23 — 강연 제목·길이·다룬 주제
- Marcelo Bielsa y su categórico elogio a Pep GuardiolaESPN Deportes, 2025.09.24 — «전술 시스템 열한 개»와 과르디올라에 대한 말
- Bielsa dio cátedra: el “declive del fútbol como deporte” y la polivalencia de ValverdeMontevideo Portal, 2025.09.25 — «같은 선수들로 모든 시스템»
- Putting team formations in association football into contextBauer, Anzer & Shaw · Journal of Sports Analytics, 2023 — 분데스리가 1,803경기 분석(자료실 글이 소개한 연구)
이 노트는 2025년 9월 23일 RFEF 강연을 다룬 기록과 자료실 글 네 편을 PROCESS가 한 줄기로 엮은 것이다. 강연의 날짜·제목·길이와 인용문은 RFEF 공식 기사, ESPN Deportes, Montevideo Portal에서 확인했다. RFEF 기사에 실렸던 행사 영상은 2026년 10월 현재 비공개 상태다.
본문의 열한 개 목록과 두 규칙(수비 +1, 백4·백3 짝)은 2019년에 공개된 비엘사 본인의 강연 슬라이드(당시 10개)와 2025년 강연을 분석한 자료들을 교차로 맞춰 정리한 것이다. 강연 화면을 한 장씩 판독해 확정하는 일은 다음 과제로 둔다.
한 가지 더 확인할 부분도 적어 둔다. 2019년 슬라이드에서 4-2-2-2의 백3 짝은 3-3-2-2로 표기되는데, 새로 더해졌다는 열한 번째는 3-2-2-3다. 둘은 다른 형태라, 3-2-2-3가 3-3-2-2를 대체한 것인지 따로 추가되어 실제로는 열두 개가 된 것인지는 원본 슬라이드를 직접 확인한 뒤에 확정한다.
‘뒤의 숫자는 상대를 보고 고르고, 공을 움직이는 방식은 우리 것으로 새긴다’는 대목과 ‘틀보다 상대를 먼저 보라’는 한 문장은 PROCESS의 읽기다.
이 노트는 PROCESS가 Anthropic의 클로드(Claude)와 함께 만들었다. 자료 조사와 사실 확인, 구조 정리는 클로드가 거들었고, 관점과 최종 문장은 PROCESS가 다듬었다.
참고 — Tommy's Boy on FM “Dogma Part 2”(2019 슬라이드 캡처) · Daniel Fraiz-Martinez, Medium “1+1=11” · Modern Soccer Coach(Gary Curneen). 이 세 자료는 주소를 다시 확인하는 대로 링크를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