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오면 1994년 미국 월드컵이 떠오릅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이터로 달려갔습니다. 골대 하나를 놓고 네댓 명이 공을 찼습니다. 골을 넣으면 골키퍼가 되고, 마지막까지 골키퍼로 남은 사람이 이겼습니다. 경기 시간은 엄마가 부를 때까지였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이 그날의 선수를 고를 수 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전력을 다해 놀이터로 뛰어갔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늘 로베르토 바지오였습니다.
밤이 깊어 엄마가 퇴근할 무렵이면 땀에 젖은 채 공을 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여름의 풀 냄새를 맡으면 지금도 그 놀이터가 떠오릅니다.
저는 그렇게 축구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당연히 제 차례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좋은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선수로 뛸 때는 기술이 좋고 빠르고 힘이 센 선수가 축구를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화려하게 경기하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수준이 올라갈수록 기술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선수들이 보였습니다. 수수해 보여도 경기를 잘 풀어가는 선수가 있었습니다. 공을 적게 잡고도 동료를 편하게 하고, 팀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에는 축구를 보는 자리가 달라졌습니다.
해설위원으로 경기를 봤습니다. 스카우터로 선수를 관찰했습니다. 분석관으로 움직임과 전술을 살폈습니다. 코치와 감독으로 훈련에서 준비한 것이 경기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지켜봤습니다.
보는 자리가 달라질 때마다 좋은 선수의 모습도 다르게 보였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선수를 지켜보니 반복해서 나타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준비와 판단, 실수한 뒤의 반응, 동료와 함께하는 방식에서 좋은 선수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기술과 태도는 하나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좋은 선수는 무엇이 다른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훈련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축구가 한 사람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은 하나의 경험입니다. 좋은 선수를 온전히 설명하려면 현장의 감각에 더 넓은 근거가 더해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자료를 공부하고 좋은 선수와 좋은 코치들이 남긴 말을 찾아보았습니다. 현장에서 본 것과 공부한 기준도 서로 대조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 팀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을 모았습니다. 좋은 선수와 좋은 코치들이 인터뷰에서 남긴 말을 저장하고, 그 말에 제가 선수와 코치로 경험한 것을 더했습니다.
그 기록이 모든 것의 시작이 됐습니다.
팀에서 코치로 일하면서 질문은 더 넓어졌습니다.
좋은 선수는 선수의 노력과 환경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어떤 팀에서 생활하는지, 어떤 코치에게 배우는지, 얼마나 좋은 훈련과 다시 시도할 기회를 얻는지가 선수의 성장에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먼저 좋은 팀과
좋은 코치가 되어야 했습니다.
답은 걸어가며 찾았습니다. 좋은 팀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선수들과 매일 훈련하며 우리가 믿는 것이 실제로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는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축구를 잘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좋은 팀과 좋은 코치, 그리고 선수들이 함께 만드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만들며 조금씩 더 잘 보고, 더 좋은 선택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좋은 팀을 고민하다 보니 좋은 환경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좋은 코치가 되려고 노력하다 보니 팀의 철학과 훈련, 기록과 관찰, 대화와 평가가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선수와 코치가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하려면 의지에 더해 좋은 선택을 도와주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택티컬 패드와 이피전시 매치, 스포츠 세션 플래너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맞는 플랫폼을
직접 만들면 어떨까.
오랫동안 생각만 하던 일이었습니다. AI가 등장하면서 직접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팀의 철학과 게임모델, 훈련과 경기, 선수의 평가와 성장을 연결하는 프로세스 스튜디오를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은퇴한 후배들이 저를 찾아올 때도 많았습니다. 함께 이야기하는 동안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말들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말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책으로 생각을 남기고, 앱으로 과정을 남기고, 팀에서 그것을 직접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축구를 둘러싼 여러 일을 보면서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는 데에도 배움이 필요했습니다. 다음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남길 때 조금씩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작됐습니다.
좋은 선수와 좋은 코치가 앞사람이 배운 데서 출발하도록 우리가 배운 것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고, 자신의 선택을 돌아보고, 다음 결정을 조금 더 잘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을 실제로 이어주는 과정.
그래서 이름을 프로세스라고 정했습니다.
축구를 더 잘하고 싶은 사람에게, 자신의 다음 선택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